고정밀 카메라 앞에서 혀를 내밀어 허·실·한·열의 상태를 진단받고, 손목을 기기에 넣어 맥박을 측정한다. 이어 터치스크린을 통해 몇 가지 문항에 답변하면, 종합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건강 상태를 분석한 결과가 제공된다.
이는 중국 전통 의학(중의학)의 핵심 진단법인 ‘삼부구후(三部九候)’에 기반한 정보 수집 절차로, 이 모든 과정은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 본사를 둔 인공지능(AI) 기업 ‘반고운수(盤古雲枢)’가 개발한 스마트 중의 진단기기를 통해 이뤄진다.
이 기기는 중의학에 특화된 대형 AI 모델인 ‘현호(懸壺)’를 탑재하고 있으며, 진단이 끝난 후에는 혀 진단·맥 진단·체질 분석 결과뿐 아니라, 뜸 치료, 괄사, 마사지 등 개인 맞춤형 한방 요법이 제안된 종합 건강 리포트가 인쇄 혹은 전자 문서 형태로 제공된다.
AI의 본격적인 도입과 함께, 중국의 중의약 분야도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향후 3~5년에 걸쳐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신흥 디지털 기술을 중의약 전반에 단계적으로 접목하여 ‘스마트 중의약’ 체계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정책적 뒷받침 속에서 중의약 산업에 진입하는 AI 기업들이 늘고 있으며, 소비자 대상 제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광둥성의 ‘우위윈 AI 테크(物語雲智能科技)’는 최근 광저우 국제 건강산업 박람회에서 AI 뜸 치료 로봇, 괄사 로봇, 혀 진단 기기 등을 선보였다.
이 중 AI 뜸 치료 로봇 ‘Ai-6’은 쑥뜸 점화, 재 제거, 연기 흡입까지 자동으로 수행하며, 스마트 온도 조절 시스템과 다관절 로봇 팔을 통해 인체의 곡선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제품은 중의 요법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특히 아프리카 바이어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AI 기술의 활용은 음료 산업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장쑤성 난징의 ‘작당우방(鵲堂羽坊)’은 ‘약식동원(藥食同源)’을 콘셉트로 내세워 젊은 층의 지지를 얻고 있으며, 매장에서 스마트 혀 진단기와 스마트 맥박 측정기를 통해 고객의 체질을 분석한 뒤 이에 맞는 양생차(養生茶)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AI 기반 중의약 혁신은 연구개발 영역에서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청두중의약대학교의 천스린 원사 팀은 중약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AI 모델 ‘본초지고(本草智庫)’를 개발했고, 저장성에서는 디지털 건강 아바타 ‘안진얼(安診児)’이 등장해, 명의의 진료 재현, 리포트 해설, 건강 기록 관리, 진료 동행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또한 중국 국가중의약관리국 산하 자격 인정센터에서는 중의약 시험에 AI 출제 기술을 도입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AI 기술은 전통 지식의 계승과 인재 양성에도 기여하고 있다. 베이징중의약대학교는 중의학·중약학·침구학 분야에서 가상 교육 실습 플랫폼을 활용 중이며, 학생들은 약초의 재배·채집·가공·제제 과정을 비롯해 인체 경혈에 침을 놓는 각도와 깊이 등을 가상 시뮬레이션으로 체험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학습 효과는 크게 향상되고 있다.
2025년 6월 24일, 중국 국가중의약관리국 관계자는 전국에 12개의 ‘디지털 중의약’ 시범 지역을 지정하고, 127개 기관을 선정해 스마트 중의 병원 시험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향후 전자 의무기록, 중약 서비스, 명의의 지식 계승, 임상 연구, 지역 연계형 스마트 의료 네트워크 등 중의약 전반에서 고도화된 AI 활용이 본격화할 전망이다.